0. 들어가며

 

코러스/플렌저/페이저 등은 모듈레이션 계열이라 불리는 이펙터들인데 대체 뭐하는 놈들인지 알아 보려고 하면 알 수가 없다. 자료를 찾아보면 다들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뭔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아 들을 수가 없으며 뭔가 설명을 하는 듯 하다가 그냥 이렇게 저렇게 만지면 이런 저런 소리가 난다는 것으로 끝이 난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하든 마음에 드는 소리를 얻으면 장땡이긴 하다. 뭔지도 모를 노브를 이리 저리 만지면서 대충 이렇게 하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하고 경험치를 쌓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취미로 하는 입장에서 그런 경험치에 쌓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놈인지 원리를 알아 놓으면 그나마 경험치 쌓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한글로 작성된 자료에서는 마땅한 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영문 자료까지 찾아 봤고 음악과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은 공학 관련 글도 찾아 봐야 했다. 신호처리 분야를 전공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공계 출신이라서 공학 관련 글을 필요한만큼은 이해할 수는 있었다.  여기에 그 동안 알아 봤던 내용을 정리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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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원

 

대부분의 Effector들이 그러하듯 이 녀석도 원래는 음향 기술에서 나왔다. 최초로 Flanger 효과를 발견한 사람은 레스폴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Flanger라는 이름을 붙이고 실질적으로 써 먹기 시작한 장본인은 비틀즈의 존 레넌 이었다.

 

레넌은 자신의 노래 실력이 폴 매카트니에 비해 딸린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보컬을 좀 더 근사하게 들리게 해 달라고 제작사에게 요청(불평) 한다. 이에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은 엔지니어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심을 하다가 다음과 같은 괴상한 짓거리를 하게 된다.

 

레넌의 노래를 마그네틱 테이프로 녹음을 한 후 이걸 다시 복사해서 2개의 마그네틱 테이프로 만든다. 이걸 ADT (Artificial Double Tracking) 이라 한다.

 

 

2개의 마그네틱 테이프를 동시에 재생하고 이를 다시 녹음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쓸데 없는 뻘짓인가 싶은데 이 와중에 더 괴랄한 짓을 한다. 한쪽 재생기의 릴 테이프 원반 (Flange) 에 손가락을 누른다. 이러면 한쪽 재생기가 살짝 늦게 돌아가게 되면서 음정이 미세하게 낮아지는 소리가 나게 된다. 이걸 정상적인 음원과 같이 녹음한다.

 

한쪽만 누르면 심심하니까 반대쪽 재생기에도 이 짓거리를 하면서 왔다 갔다 한다.

 

이런 괴랄한 짓거리로 녹음된 소리를 존 레넌은 들어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주 좋아했다고 하며 심지어 릴 테이프인 Flange에 손가락을 눌러가며 녹음을 하는 이 방식에 “Flanging”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줬다고 한다.

 

 

존 레넌이 만족했다는 그 소리가 음반으로 발표된 것이 1966년에 발표된 “Tomorrow Never Knows”이다. 이 곡을 들어보면 제목답게 뭔가 미래지향적이긴 한데 당시의 가능한 음향 효과들을 총 동원해 떡칠을 해 놓은 듯 해서 어느 부분이 Flanging 효과에 의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후 비틀즈는 음반 작업에서 Flanging을 애용했다고 한다. 1967년 발표한 "Strawberry Fields Forever" 에도 써 먹었고 1969년에 발표된 “Yellow Submarine”에도 쓰였다고 한다. 들어 보면 뭔가 탁한 느낌이 있는데 그게 Flanging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슈퍼스타 비틀스의 요상한 짓거리가 소문이 났는지 Flanging을 해 주는 Flanger 기계가 등장하게 된다. “Eventide”라는 회사에서 녹음실 스튜디오에서 쓸 수 있는 최초의 Flanger 기기를 1975년 내 놓는다. 그리고 1976BOSS에서 기타용 Flanger Effector (BF-1)을 내 놓는다.

 

비틀즈의 프로듀서가 했던 Flaning을 하는 기계가 Flanger. Flanging은 손가락으로 모터의 각속도를 줄여서 Delay된 음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행위이며 Flanger도 그런 짓을 하는 기계다. Flanger가 하는 행위는 결국 Delay이다. 그런데 통상적인 Delay Effector와 달리 Flanger는 뭔가 복잡하며 결과물을 소리로 들었을 때의 느낌도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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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b Filter

 

Flanger가 어떻게 동작하는 건지 알려면 어쩔 수 없이 공학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쉽게 이해해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Flanging을 하면 소리가 묘하게 변하는 것은 Delay 시간에 따라서 Comb Filter의 양태가 달라지게 때문이다.

 

우선 Filter란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하는데 주어진 입력의 일부만 통과 시키는 것을 Filter 라고 한다. 광학 필터 중 색안경은 자연광 중에서 특정한 색상의 파장만 통과 시키고 나머지는 막는다. 마찬가지로 입력 신호 파형에서 특정 주파수 대역을 선택적으로 통과 시키는 장치를 Filter 라고 한다.

 

보통 공학에서는 관심 있는 영역의 주파수 파형만 남기기 위해 기준보다 높은 주파수만 통과 시키는 High Pass Filter와 기준보다 낮은 주파수만 통과 시키는 Low Pass Filter를 결합한 Band Pass Filter를 많이 사용한다.

 

 

위의 그림과 같은 특성을 가진 Filter는 입력된 신호에서 대략 1063Hz~1065Hz 의 신호만 남기고 나머지는 제거한 출력을 내보낸다. 실질적으로는 1064Hz 만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Filter인데 이건 라디오의 주파수를 잡는 것과 똑같다. 특정한 주파수의 라디오 방송 신호만을 추출하는 것은 전형적인 Band Pass Filter를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Filter의 특성이 아래와 같으면 이걸 대체 어디에 써 먹나 싶나.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암튼 생겨 먹은 것이 머리를 빗는 빗(Comb)처럼 생겨서 Comb Filter라고 한다. 딱 봐도 요상하게 생긴 것이 써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게 Flanging과 무슨 상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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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elay가 생기면 벌어지는 일

 

동일한 신호 파형 2개에 대해 적절한 시차를 두면 Comb Filter 효과가 발생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는 뭔 소리 하는지 모를 수식을 잔뜩 늘어 놓고 설명을 하는데 굳이 수식을 동원하지 않아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주기 파형은 각속도와 위상각 상이한 sin 파형의 합으로 구성할 수 있다. 이건 17세기 "퓨리에"라는 프랑스 사람이 퓨리에 급수란 것을 내 놓으면서 수학적인 증명을 해 놓았는데 이걸 비주기 파형에도 적용하기 위해 기준이 되는 주기 T(시간)을 무한대로 놓는 퓨리에 변환이 나오면서 임의의 파형에 대해 이를 구성하는 임의 주파수의 크기(Amplitude)를 수치화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공학에서 주파수 이야기가 나오면 그 파형은 sin 파형을 의미한다.

 

예제로 1kHzsin 파형과 2kHzsin 파형이 합쳐진 소리 파형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비틀즈의 프로듀서가 했듯이 소리 파형을 복제해서 2개의 똑같은 소리 파형을 구성하고 그 2개의 소리 파형을 시지연 없이 (손가락 안 대고) 합치면 1kHz 2kHz 주파수의 크기가 원음 대비 2개 커진다. 즉 원음이 그대로 2배 커지게 된다.

 

 

 

 

 

시지연을 0.25 msec을 두고 2개의 소리를 합쳐 보자. 이러면 1kHz은 원음의 약 1.4배 (root 2) 커지고 2kHz는 없어지게 된다. 구글의 인공지능에게 물어 보니 sin(x) + sin(x-90) = root(2) sin(x-45) 라는 답을 줬다. 대충 맞는 듯 하다. 인공지능 좋네

 

 

 

 

시지연을 0.5 msec을 두고 2개의 소리를 합쳐면 1kHz은 없어지고 2kHz는 원음의 2배가 된다.

 

 

 

시지연이 없으면 1kHz, 2kHz 모두 2배가 되지만

0.25msec 지연 시 1kHz는 1.4배 , 2kHz는 0배 되고

0.5msec 지연 시 1kHz는 0배, 2kHz는 2배가 된다.

 

즉 동일한 신호 2개가 합쳐질 때 시지연이 있으면 크기(이하 Magnitude)가 커지는 주파수가 있고 작아지는 주파수가 있으며 시지연 값에 따라서 Magnitude 가 컸던 주파수가 작아지기도 하고 Magnitude 가 작은 주파수가 커지기도 한다.

 

시지연을 0~0.5msec 사이에서 계속 바꾸면 1kHz 크기는 원음 대비 2배에서 0배로 오락가락 하게 되고 2kHz는 그 보다 더 빨리 오락가락 하게 된다. 즉 원래의 소리에서 주파수들의 Magnitude 크기가 오락 가락 변하면서 전체적으로 울렁대는 소리로 변한다. 시지연 변화 주기가 빠를수록 울렁거리는 주기도 빠르게 된다.

 

시지연이 값이 일정한 경우 시지연에 의한 주파수별 Magnitude 의 변화 양태는 일정한 주파수 단위로 반복되며 원음을 변경하게 되는 Filter 효과를 나타내는데 이를 Comb Filter 라고 한다.

 

복제된 동일한 신호를 시지연을 두며 합치면 지연 시간에 따라 특정 주파수의 크기가 작아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면 원음과는 다른 느낌의 Tone이 날 수 밖에 없다. 여러 개의 마이크를 두고 녹음을 하는 경우 원음과는 다른 느낌으로 Tone이 녹음된다. 여러 개의 마이크를 두고 녹음할 때 소리를 근원에 가까운 마이크와 먼 마이크를 동시에 녹음하면 녹음된 소리는 원본과는 다르게 된다.

 

녹음 시 마이크를 여러 개 두는 경우 아무렇게 두는 것이 아니라 Comb Filter 효과를 피하기 위해서 마이크를 놓는 법이 따로 있다고 한다. 마이크를 설치할 때 Comb Filter 효과를 피하는 법이 있다는 것을 보면 비틀즈의 음향 엔지니어들은 동일한 신호가 시지연 되어 겹치면 Comb Filter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오히려 이를 음향효과에 이용했던 듯 하다.

 

Delay 시간이 일정하다면 Comb Filter의 양상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런데 Delay 시간을 변경하면 이에 따라 Comb Filter의 폭이 달라진다. Delay 시간이 길어지면 Comb Filter가 변동되는 폭이 커지고 작을수록 폭이 짧아진다. Delay 시간이 충분히 길어지면 Comb Filter의 폭이 커지면서 가청 주파수 내에서 각 주파수의 소리 크기가 큰 변화 없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즉 Delay 시간이 길면  Comb Filter 효과로 인한 음색 변화를 체감할 수 없게 된다.

 

 

 

비틀즈의 프로듀서가 손가락으로 Flange를 세게 누르면 누를수록 Comb Filter의 폭이 커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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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Flanger 동작

 

Flanger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Flange를 누르던 것을 기계가 대신하는 것이다. Delay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구현할 수 있다.

 

위 그림과 같이 Flanger Effector는 입력 신호를 복제하여 2개로 나누고 한쪽에 시지연을 두어 원 신호와 섞는다. 이 때 Delay 시간은 일정 범위 내에서 가변적으로 계속 바뀌게 되는데 이 역할을 하는 것이 LFO 이다. 즉 손가락에 힘을 줬다 뺐다 하는 역할을 LFO가 하게 된다. 손가락을 사용하여 시지연 시간을 늘리고 다시 상대방 녹음기를 누르는 것으로 시지연 시간을 좁혔는데 Flanger는 한쪽에서 시지연 시간을 늘렸다가 좁혔다가 할 수 있다.

 

Flanger를 이용하면 음의 높낮이가 미세하게 바뀐다고 느끼는 것은 Comb Filter 효과로 인해 소리의 구성하는 주파수들 중에서 어떤 주파수의 Magnitude 는 커지고 어떤 주파수의 Magnitude 는 작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LFO를 동작시켜 Delay 시간을 연속적으로 변경하면 주파수의 Magnitude 변화 양태가 LFO 동작 주기에 따라 계속 바뀌면서 소리가 변화 한다.

 

시지연 폭이나 LFO의 변동 주기 및 원음과의 Mix 비율, 그리고 원음의 음역대에 따라서 소리의 느낌은 천양지차가 된다. 그냥 소리가 다르게 들릴거나 울렁거리게 들릴 수도 있고 맥놀이 효과가 나서 "우~웅" 거릴수도 있고 "쏴~아" 하는 소리가 날 수도 있다. Flanger 제품들마다 동작 방식 및 노브 파라미터의 개수 및 이름이 상이해서 결국은 만져보며 경험치를 쌓는 수 밖에 없다.

 

비틀즈에서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Flanging을 했지만 Flanger는 제조사 제품별로 동작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LFO에서 Delay 시간을 변경하는 함수를 sin 외에 다른 함수를 제공하는 것도 있고 Delay 된 파형에 Filter를 걸어서 Comb Filter의 동작 특성을 임의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아마도 기능이 많을수록 후발주자의 제품일 가능성이 높다.

 

Flanger Effector는 지연음을 아래와 같이 되먹이는 기능도 제공한다. Comb Filter의 폭 변동이 뭔가 요동 칠 것 같긴 한데 이게 어떻게 동작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찾아 보니 "쏴~~~아" 하는 느낌이 강해져서 거의 제트기 소리가 난다고 하며 Comb Filter의 변화가 중첩되고 지속되면서 잔향이 길어져서 그런 효과가 강화되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이러저리 해 보니 하이 게인 톤에서 Flanger를 걸면 거칠어지는 느낌이 더 강화되긴 하지만 "쏴~~아" 하는 듯한 제트기 소리 효과를 얻으려면 어느 정도의 FeedBack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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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코러스는 플렌저보다 더 긴 딜레이 시간 (20ms~50ms)을 줘서 Comb Filter의 폭을 더 늘린 효과를 사용하는 것이다. Comb Filter의 폭이 커서 톤의 변화가 플렌저만큼 강하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일부 주파수의 Magnitude 가 원음 대비 변경되면서 원음에 더해 피치가 미세하게 틀어지게 된다. 여기에 LFO로 딜레이 시간을 연속적으로 조정하면 피치가 계속 미세하게 변하면서 합창을 하는 효과를 준다고 한다. (Delay:최소 Delay 시간, Depth: Delay 시간 변화의 폭, Rate : 시간 폭 변화의 속도, 정도로 여기면 될 듯)

 

PS :  코러스를 쓰든 플렌져를 쓰든 원 신호에 딜레이 된 신호를 더하는 방식이므로 Comb Filter의 폭에 따라서 특정 주파수 영역의 Magnitude 가 원음 대비 최대 2개 커지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즉 음량이 Boost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물론 설정에 따라 음량이 폭싹 주저 앉는 듯한 느낌도 줄 수 있다. 플렌저에 비해 코러스가 왠지 더 Boost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Comb Filter의 폭이 커서 왠만한 주파수들의 Magnitude 가 커지기 때문이다.

 

PS : 페이져(Phaser)는 음향 효과가 Flanger와 비슷하긴 하지만 동작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아날로그 회로적인 입장에서는 Delay 회로가 아니지만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하면 결국 이전 샘플링 값을 사용하기에 Delay라고도 볼 수 있다. 페이져에 대한 것은 별도 작성 ( ikipus :: Phaser Eff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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