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들은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고 . . .
정착민들은 장소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뭐 . . . 그럴 듯한 이야기 . . .


대학 때 배운 각종 수학적 변환들 . . .
그 목적은 시간의 종속을 피하기 위한 것이였다.
뉴튼 류의 근대 물리학도 그렇지 않나?
근대 과학은 정착민들의 사고 방식에 근거한 것인 듯.


근대 서양의 클래식 음악은 어떤가?
몇 백년 전에 베에토벤이 초연한 곡을 지금 연주한다고 해도 . . .
그건 다 똑같은 곡이다.
시불변성을 획득한 음악.
역시 정착민의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유목민의 신화인가 정착민의 신화인가?
제우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유폐시켰다.
시간을 관장하는 다른 신은 보지 못한 듯.
제우스는 아버지를 유폐시킴으로써 시불변의 존재가 되었다.
그리스 신화 역시 정착민들의 이야기.


요즘은 어떤가?
시변적인 요소들이 점점 강세를 띄어가고 있지 않은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영원의 존재보다는 지금 존재하는 찰나가 더 인정 받고 있지 않은가?


반복 재생 아무리 잘해 봐야 붕어라는 평가를 받을 뿐이다.
좀 더 새로운 것, 좀 더 다른 것,
변화가 이 시대의 Keyword 이다.
안 변하면 죽는다고 사방에서 난리다.


즉흥성이 강한 예술이 득세한다.
재즈가 고급 음악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폐인트를 휙휙 뿌려 던져 놓고는 명작이라고 한다.


변덕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잘 어울리는 단어다.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구체적인 것을 쫓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


추상적인 Class보다는 구체적인 Instance가 더 중요하다.
Class에 포함된 추상적인 내용으로 모든 Instance의 행위를 통제하고 제어할 수 없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것은 결국 시대의 흐름.


이제 세상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빠르게 변해서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시변은 벗어 던져야 할 제약이 아니다.
오히려 귀하게 모시고 챙겨야 할 숭배의 대상이 된다.


예전에는 항구적인 것에 비중이 컸다.
상황이 그리 빨리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측이 가능했고 그에 따른 대응도 가능했다.
시간은 통제 가능한 것이였다.


지금은 상황이 너무 빨리 변한다.
도저히 쫓아 갈 수가 없다.
예전처럼 통제 가능한 범위가 되도록 상황을 내게 맞출 것인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변덕스러운 상황을 우러러 모셔야 한다.
상황을 변화할 수 없다면 내가 상황에 맞춰야 한다.
아니면 망한다. 기업들이 목숨걸고 하는게 이런거 아닌가.


찰나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크로노스가 부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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