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푼돈,건달,아이들,도주,집)
나는 어디론가 걷고 있었다. 어딘지 아는 듯한 익숙한 곳으로 개인적인 용무가 아닌 공적인 일로 가는 듯 했다. 갑자기 지하철 역에서 나온 나는 이리저리 헤메고 다녔다. 그 곳은 서울 시내 한복판이였으나 어딘지 한적한 골목 같은 느낌이였다. 그러다가 진짜 골목에서 나와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에서 길을 건넜다.
길 건너 풍경은 언덕에 빼곡히 집들이 들어찬 금호동을 연상시켰다. 길을 건넌 나는 5000원짜리 1장과 1000원짜리 몇장을 손에 꼭 쥔 채 가방을 들고 큰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 어떤 사내가 내 곁은 따라 걸으며 돈을 요구한다. 그 사내는 '내 멋대로 해라'에 나왔던 스턴트맨 배역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까까머리에 험상궂은 인상이였으나 어설픈 느낌이였다. 요즘 TV의 예능 프로에 나오는 '길'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나사가 풀린듯한 그런 느낌.
그는 나에게 돈을 요구했단. 거지와 깡패 사이의 그 중간쯤 되는 어설픈 강탈을 시도한 것인데 나는 돈을 손에 꼭 쥔 채 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는 집요하게 나를 따라오며 돈을 요구했고 순간 순간 손에 쥔 몇 천원을 주고 이 녀석을 떼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손 안의 돈을 보여주고는 이것 밖에 없으니 너에게 줄 돈은 없다는 말을 하고야 말았다.
돈이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나를 계속 따라오며 돈을 요구한다. 결국 나는 가방은 매고는 그에게서 도망쳐 달리기 시작했다. 어릴 적 많이 보았던 듯한 주택가 골목길을 나는 계속 내달렸다. 어느 사이 그 사내를 따르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합세하여 3명이 나를 맹렬히 추격했다.
나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고 거기에서 허리 높이의 높지 않은 대문이 열린 집으로 무작정 들어가 문을 닫고 몸을 숨겼다. 나를 추격하던 그들은 막다른 길에서 발길을 돌렸으나 여자아이는 한 동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대문 틈을 통해 집안을 쏘아 보았다. 꿈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난 그 대문 너머에서 그 아이의 눈빛을 정면에서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갔고 그 집안에서 평범하지만 생기 넘치는 3명의 젊은 여자들과 마주쳤다. 나를 본 그녀들은 굉장히 놀라며 얼어 붙었다.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면 그 소리에 나를 쫓던 그들이 되돌아 올 것 같았으나 그녀들은 침착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그녀들은 나를 친절히 대해 주었다.
집안에 가방을 두고 불안한 휴식을 취하던 중 어디에서 통기타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소리의 주인공인 어느 젊은 남자가 등장한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난 그를 영화배우라고 간주했으며 그 역시 나를 친절히 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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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종 소리에 깨기 직전에 꾸고 있던 꿈이였다.
추격을 당하고 있었던지라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가슴은 한동안 두근거렸다.
요즘에 내가 처한 상황을 떠올리며 무의식이 무슨 이야기를 걸어 온 것일까 생각해 본다.
얼마 안 되는 몇 천원에 대한 집착...
꿈에서 깨자마자 얼마 안 되는 몇 천원은 회사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걷기를 시작했던 것도 출장가는 듯한 느낌이였다.
회사일에 바쁜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회사일이 내 인생에 그리 중요치 않다는 생각을 반영하는지...
손에 쥔 것은 10000원도 안 되는 몇 천원.
그래도 여전히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어설픈 불량배는 회사일을 때려치고 싶은 내 마음일 수도 있고...
아이들과 같이 나온 것으로 봐서는 내 가족일 수도 있다.
근래 업무 때문에 퇴근이 매일 늦으면서...
내가 느낀 가족들의 불만이 저런 모습으로 나타난 건가.
특히 내가 정면에서 응시했던 이글거리던 여자아이의 눈빛...
내가 만들어 낸 안전구역으로 보이던 집...
그 집안의 사람들은 내 분신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통기타를 치던 그 남자는 그런 혐의가 다분하다.
3명의 여자들 역시 내 분신인가?